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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 나이 감독 딸 가족 아내(부인) 본문
황선홍 나이 감독 딸 가족 아내(부인)
축구선수 출신 감독 황선홍은 충청남도 예산군 출생 1968년 7월 14일 52세이며 183cm, 80kg,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우리나라 축구계의 전설로 불리고 있습니다.
황선홍은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국가대표(A매치) 103경기 50골로 A매치 득점 2위, 센츄리 클럽 가입자로 공격수는 차범근, 황선홍, 이동국 3명 뿐이라고 하며 한국 축구선수 유일의 해외리그 득점왕입니다.
황선홍은 1988년부터 2002년까지 대표팀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해왔으며 국가대표 선수 시절 한일전의 일본킬러로 유명해 한일점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5골을 성공시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잦은 부상과 불운의 선수이기도 했으나 2002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스트라이커로 엄청난 활약을 하며 레전드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어 최근 ‘안싸우면 다행이야’에 출연하여 2002 월드컵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는데요. 황선홍은 "그 한 골 넣으려고 평생 축구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진짜 한 골이 절실했다"며 "월드컵 네 번 나갔는데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워낙 한이 많이 맺혀서 진짜 노력을 많이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황선홍은 1993년 3살 연하의 아내 정지원 씨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슬아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황선홍과 아내 정지원 씨는 독일 유학시절에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1992년 “독일 유학 당시 후배 손에 이끌려 파티에 갔다가 만난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해 대시했지만 거절당했다”라며 당시 아내 정지원 씨는 황선홍이 누구인지 몰랐다고 하는군요.
당시 아내 정지원 씨는 덕성여대 독문학과 3학년생으로 어학연수차 머문 독일의 유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당시 내가 좀 다쳤는데 그때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던 것 같다. 후배가 내 말을 듣고 부인을 데리고 왔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황선홍은 경기 도중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었던 황선홍의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 근처에 허름한 방 하나를 얻어놓고 재활 치료하는 것을 도왔다고 하는데요.
황선홍은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나를 간호했다"며“ 그 후로 6개월 동안 독일에서 같이 보냈고 함께 한국에 들어와서 6개월 후에 결혼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황선홍은 연애시절 “왕복 4시간 거리를 매일 운전해서 30분 만나는 생활을 몇 달 동안 했다고 하는군요.
과거 방송에 출연해 ‘첫사랑이랑 결혼하면 어떠느냐‘라는 질문에 “아내는 너무 일찍 결혼해서 후회할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후회없다.”고 말했는데요. 두 사람이 결혼 할 당시 나이가 황선홍은 26살, 아내 정지원 씨는 23살이었다고 하는군요.
황선홍은 2남 1녀의 자녀 중 장녀인 딸 황현진은 20살 때 2014년 8인조 걸그룹 예아(Ye.a)로 데뷔한 이력이 있는데요.
당시 ‘이겨’라는 예명으로 활동, 영어와 일본어 등 능통한 외국어 실력과 꾸준한 트레이닝으로 댄스와 보컬 실력까지 갖춘 신예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인 황선홍은 딸의 방송활동에 대해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것과 비난과 악플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심한 반대를 했다고 하는군요.
결국 다섯 살 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다는 황현진은 아버지인 황선홍에게 "이 일을 해보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다"고 말했고 결국 허락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14년 9월 미국 뉴욕대학교에 합격하면서 그룹 활동을 중단하게 되는데요. 그녀는 미국 뉴욕대학교 스포츠매니지먼트학과에 입학해 "아버지 일이 스포츠와 관련이 있다 보니까 나도 알고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하게 됐다"며 "언젠가 아버지와 같이 일해보고 싶은 로망이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황선홍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운영하던 택시회사가 망하면서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다고 하는데요. 반지하 단칸방에서 아버지와 3남매가 살면서 달리기로 힘든 마음을 풀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달리기로 각종 대회에 상을 휩쓸면서 축구 선수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아버지 홀로 축구선수 아들을 뒷바라지하셨으며 1996년 병으로 작고하셨다고 합니다.
황선홍은 은퇴 후 해설자를 거쳐 2008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감독으로 데뷔해 2020년까지 감독직을 역임해 왔으며 2020년 9월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