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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크로스 김혁건 사고상황 재기 응원 본문
더크로스 김혁건 사고상황 재기 응원
더 크로스의 김혁건과 이시하의 오해
탈퇴 후 락밴드 크로스 결성
재결합 준비 중사고 후 재활과 근황
김혁건은 1981년 4월 23일 38세로 2003년 ‘더 크로스’로 데뷔한 실력 있는 보컬인데요. 너무나 반갑게도 슈가맨 3에 김혁건이 출연한다고 합니다.
김혁건은 ‘더 크로스’의 탈퇴 후 ‘락밴드 크로스’ 활동하다 다시 더 크로스 멤버 이시하와 재결합 하게 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나서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전해주었는데요.
슈가맨 3를 통해 그의 근황을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더 크로스는 1기 멤버인 이시하와 김혁건, 2기 멤버는 이시하와 김경헌, 현재는 다시 이시하와 김혁건이 재결합하며 2기 멤버인 김현헌은 솔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혁건 데뷔/더 크로스
김혁건은 1999년 이시하와 함께 더 크로스를 결성하며 인디밴드의 길을 걷게 됩니다. 2001년 M.net에서 열린 뮤직 페스티벌 락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GF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2003년 1집 'Melody Quus'를 내면서 프로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렇게 1집 앨범을 내며 당시 타이틀곡인 'Don't Cry'를 히트시키게 되는데요.
김혁건의 파워풀하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에 고음까지 더해져 더욱 유명해진 곡입니다.
하지만 좋은 곡과 훌륭한 보컬임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면서 소속사와 마찰이 생기게 되며 멤버 이시화와 오해까지 더해져 결국 김혁건은 더 크로스를 탈퇴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룹을 탈퇴한 후 김혁건은 ‘락밴드 크로스’를 결성하여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끌게 되며 독일 월드컵 당시 싸이와 함께 월드컵 가수로 선정되어 'Goal! Corea!'를 내면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김혁건 군 입대/공수부대
김혁건은 179cm, 69kg의 건장한 체격으로 2009년 8월에 공수부대로 입대하게 되며 2011년 전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디지털 싱글 '병 속의 요정', 10월 21일에는 2집 'When You Need'를 내며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또한 전문대학교 내 실용음악과에 출강하여 강사로 활약을 하고 더 크로스 멤버 이시하와 오래를 풀게 되면서 재결합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음악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주말마다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며 이때가 자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고 말합니다.
☆김혁건 오토바이 사고
2012년 3월 26일, 김혁건은 더 크로스 컴백 준비 차 앨범 녹음 작업을 마치고 오토바이로 밤길에 귀가하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당시 사고는 불법 유턴으로 예측 출발(보행자 혹은 차량이 신호등 변경 전에 신호등 변경 여부를 유추하여 미리 출발하는 것)을 하던 차량이 직진하던 김혁건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정면충돌을 하면서 차에 얼굴을 박고 땅에 떨어지는 순간 목이 부러지면서 마비가 되었다고 하네요.
당시 김혁건은 목이 부러지면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고 합니다.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아 이대로 죽겠구나 생각하다 부모님의 얼굴은 보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정신줄을 꽉 붙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병원에 도착한 후 간호사는 부모님께 전화를 하며 "20분 내로 오지 않으면 아드님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김혁건은 어깨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깨어나게 되면서 김혁건은 그때부터가 살아있는 생지옥이라고 표현합니다.
발꿈치, 허벅지, 엉덩이, 허리, 뒤통수까지 몸이 썩어있어 매일 수술실에서 썩은 살을 도려내는 수술을 1년 동안 받았다고 합니다.
수술이 끝나면 수술 부위 때문에 엎드려 지내야 했다고 하네요. 1년 동안 의식은 있었지만 비몽사몽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힘든 재활 과정을 통한 시간은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이 컸으며 교통사고 후유증과 우울증까지 시달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김혁건의 옆을 지켜주었으며 지금까지 그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김혁건의 도전 / 아버지
김혁건은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복식호흡이 아예 되지 않아 노래를 부를 때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본 김혁건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복압 장치'를 만들게 되는데요.
복압 장치는 복식호흡 배를 눌러주면 고음이 올라가는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며 처음에는 보조자가 수동으로 눌러주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첫 무대인 ‘스타킹’에서 더 크로스 멤버이자 친구인 이시하가 수동으로 복압 장치를 눌러주고 있습니다.
그 후에 서울대학교 로봇융합연구센터에서 개발하기에 이르러 자동 복압 장치를 발명하게 되며 김혁건 혼자서도 무대에 설 수 있게 됩니다.
☆김혁건의 재기
김혁건은 2014년 놀라운 대회 스타킹을 시작으로 방송에 복귀를 하게 되는데요.
그 후로도 2014년 12월 30일 31일 더 크로스 완전체로 콘서트를 열게 되며 '강연 100˚C', 2017년 불후의 명곡 2018 평창 동게 패럴림픽 개막식 무대에서 애국가를 부르기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혁건은 학업에도 매진하게 되어 박사학위까지 받게 되는데요. 우수논문상을 받으며 졸업하게 됩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강한 집념과 정신력으로 또 다른 뜻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혁건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도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희망이 없다면, 자신에게 넌 할 수 있다고 계속 외쳐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마세요. 저도 포기하지 않을게요. 제 노래가 모든 분들에게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김혁건씨를 응원하고 또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