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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숙 가수 나이 프로필 남편 사랑 결혼 과거 리즈 본문
장은숙 가수 나이 프로필 남편 사랑 결혼 과거 리즈
가수 장은숙은 서울 출생으로 1957년 5월 2일 67세이며 학력은 보성여자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 수료), 166cm, 49kg, 1977년 '맷돌'로 데뷔했습니다.
장은숙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1977년 동양방송(TBC)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탄생'에서 대상을 받은 뒤 데뷔 후 데뷔했다. 1978년 1집 '춤을 추어요'를 히트시키며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당신의 첫사랑' '사랑' '이별의 손짓' 등의 대표곡을 냈습니다.
장은숙은 1981년에는 코미디언 이주일과 공동주연으로 이주일의 리빠똥 사장이라는 영화를 찍었으며 2012년, 2013년에는 각각 드라마 ‘별도 달도 따줄게’, ‘삼생이’의 OST 제작에도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장은숙은 활동 당시 ‘섹시하다’라는 이미지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이에 대해 “노래를 들어주신 게 아니라 항상 시선을 제 미니스커트에 오게 한 제 불찰도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춤을 추어요’ 한 곡으로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그런 가수가 되지 않을까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상처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장은숙과 1978년 함께 데뷔한 동료가수로는 윤수일, 혜은이, 이은하였으며 활동중이던 가수 혜은이는 국민 여동생 같은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장은숙은 도도한 이미지로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활동 중이던 장은숙은 “전성기만 있을 수는 없다. 옛날의 나는 아니었다. 내가 외면당하고 있구나”라면서 “어떻게 하지 하다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95년도에 데뷔를 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아무런 연고도 없던 그녀는 당시에 대해 “일본에서 1978년부터 계속 러브콜이 왔다”라며 1985년에 슬럼프도 있었고 한번 갔다가 올까 싶어서 갔다"고 일본어도 몰랐던 그녀는 힘들고 벅찼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우여곡절의 시간을 보내고 ‘장수’라는 예명으로 데뷔 첫해 일본유선방송 신인상을 받았으며 2000년 발표한 '운명의 주인공'이 수록된 싱글은 각종 차트에서 12주 이상 1위를 차지하며 총 25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하는데요.
2009년부터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기 위해 일본에서도 본명인 장은숙으로 바꿔 활동했다고 합니다.
장은숙은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야쿠자 연루 루머에 휩싸이기도 했는데요. 그녀는 "일본에 넘어갈 때가 30대 후반이었다. 저는 솔직히 데뷔만 하고 오려고 엄마한테 얘기 안 했다. 지인들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 데뷔 후 1년 정도 지난 후 루머가 돌기 시작했으나 당시 한국에 소속사가 없어서 기사와 관련해 입장을 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어 그녀는 “야쿠자를 알 상황도 안 됐고 항상 사무실이랑 레코드사만 왔다갔다 했다. 야쿠자도 일본어를 해야 만나지 않냐. 저는 정말 관계가 없는데 그런 얘기가 돈다고 엄마도 말하시더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일본 활동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어떤 때는 99엔짜리 일본 팥빵 하나를 먹고 종일 굶은 적도 있었다“라며 그때 나이가 38~39세 정도였는데 나이 먹고 굶으려니 자신이 초라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레코드사에 가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요코하마에서 첫 버스킹때 라면 박스 같은 데에 올라가서 무대를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장은숙은 결혼을 결심한 3살 연하의 사람이 있었으나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혔다는 사실을 밝히며 당시 일본에 데뷔한 그녀는 "일본에서 금방 돌아올 줄 알았다. 전화통화를 자주 하면 되겠지 했다. 그런데 전화 상태가 안 좋고, 공부하고 학교 다니고 신곡을 연습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자주 대화하고 만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라고 털어놨는데요.
이어 결혼이 무산된 후 남성이 유학을 떠나고 일본에서 활동 후 돌아오니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대해 “ 큰 상처를 받고 죽어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매일 노래 연습을 거르지 않고 꾸준한 운동을 한다고 하며 한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간다는 인생철학도 성공의 디딤돌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장은숙은 한국 활동 뿐 아니라 현재도 일본에서 콘서트를 개최,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기획사 대표로 일본 내 신인가수 배출에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