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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 노래 나이 학력 공연 과거 직업 부인 본문
장사익 노래 나이 학력 공연 과거 직업 부인
가수 장사익은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출생, 1949년 (74세), 학력은 광천중학교 (졸업), 선린상업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경영학과 / 학사), 1994년 장사익 소리판 '하늘 가는 길'로 데뷔했습니다. (소속사 : 행복을 뿌리는 판)
장사익은 고교 졸업 후 15가지 직업을 전전하다 45세이 나이에 가수로 데뷔하며 한국 최고의 소리꾼 중 하나로 '가장 한국적인 창법의 소리꾼'으로 불리며 강력한 티켓파워를 갖고 있는 가수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합니다.
장사익은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장사익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유명한 장구잡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장사익은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는 노래보다도 장구를 잘 치는, 아주 흥이 많은 분”이라며 “무학(無學)이었지만 사람의 도리를 강조하시는 분으로 살아가는데 큰 지침이 되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린 시절 국회의원이 꿈이었던 장사익은 웅변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학교 가기 전 새벽에 뒷산에 올라 소리를 지르며 뱃심을 길렀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발성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사익은 학교 다닐 때 노래를 하면 목청이 좋아 주변에서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요.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 첫 직장을 다니며 낙원동 가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하며 군대에서도 노래를 3년 동안 배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제대 후 가수에 대해 생각했지만 집안 형편도 좋지 않고 스스로 자질도 없다고 생각해 꿈을 접었다고 합니다.
장사익은 가수로 데뷔하기 전 15개의 직장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첫 직장은 고려생명보험회사 내근직을 시작으로 무역회사, 동생이랑 강릉에서 딸기 장사, 가구 외판원, 연구소 경리과장, 청계천 전자상가, 독서실 운영, 마지막에 매제가 하던 카센터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고 합니다.
스스로 “저는 배운 것도 없고 성격도 차분하지 못해서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했거든요”라며 자신의 길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카센터에서 서태지와의 인연이 생기게 되는데요. 당시 차를 고치러 자주 오던 서태지의 매니저가 ‘하여가’에 들어갈 태평소의 연주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장사익은 ‘내가 좀 분다’라며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실 장사익의 아버지는 장구재비였으며 삼촌은 날라리(태평소)였다고 하며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국악을 들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1980년부터 거의 독학으로 태평소를 배웠던 장사익은 죽기 살기로 3년간 태평소에 매달렸다고 하는데요. 마지막 직장인 카센터를 그만 둔 후 이광수 사물놀이패에서 태평소를 불기 시작해 전주대사습놀이와 전국민속경연대회 등에서 대상을 휩쓸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사물놀이패 공연 뒤풀이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며 당시 피아노를 쳤던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장사익의 노래를 듣고 함께 공연을 하자는 권유로 소극장 공연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100석 규모의 소극장은 이틀간 무려 800명이 관람하면서 큰 화제가 되었고 이를 지켜본 가요관계자들이 권유해 그동안 틈틈이 만들어놓은 '찔레꽃' '꽃섬' 등을 엮어 첫 음반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1994년 46세에 신촌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며 늦은 나이에 가수로 데뷔를 하여 현재까지 총 9장의 앨범을 발표,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 참여, 1995년 KBS 국악대상 대통령상, 1996년 KBS 국악대상 금상, 1997년 SBS 드라마 임꺽정 OST, 2006년 국회 대중문화 미디어 대상 국악상 등을 수상,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등 현재까지 뛰어난 실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특히 장사익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당시 본인이 직접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러서 빈소 조문객들로부터 공감을 샀다고 하는데요.
이후 경제학자이자 언론인 정운영의 영결식에서 '봄날은 간다', 신영복 출판기념회에서는 '동백아가씨', 작가 이청준 장례식장에서는 미당의 시에 곡을 붙인 '황혼길'을 헌창했다고 합니다.
굉장한 티켓파워를 자랑하고 있는 가수 장사익은 데뷔 2년 만인 1996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매진시켰으며 이후로도 장사익의 공연은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어 2015년 3월 KBS 1TV에서 방송한 '공사창립 특집 콘서트 이미자-장사익'은 지상파 3사 인기 드라마를 제치고 시청률(20%)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팬과 결혼한 장사익은 1994년 소극장에서 가수로 데뷔할 당시 ‘생중계 기획’을 맡은 사람이 장사익의 팬인 고완선 씨였으며 이듬해 고완선 씨와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현재까지 아내 고완선 씨는 장사익의 매니저를 맡고 있다고 합니다.
이어 결혼한 두 아들 모두 대금을 하고 있다고 하며 각각 국악관현악단, 정동극장 단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난한 시골생활을 견디다 못해 상경한 장사익은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다 46세의 나이에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아 한국 최고의 소리꾼이 되었는데요.
관객들과 호흡을 중요시하며 라이브만을 고집하면서도 강한 힘이 깃든 노래 실력만으로 일흔이 넘은 나이임에도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