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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자 남편 구석봉 나이 딸 최진희 본문
최선자 남편 구석봉 나이 딸 최진희
배우 최선자는 전라도 출생, 1941년 11월 3일생 79세이며 1961년 MBC 성우극회 1기 성우로 입사, 1970년~80년대 ‘수사반장’, ‘소망’, ‘봉선화’ 등 연극 무대와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문화부장관 ‘신인예술상’을 비롯해 전통 있는 동아연극상, 한국연극영화상(現 백상대상) 등 상을 휩쓸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최선자의 남편은 시인 구석봉 씨로 9년 가까이 남편의 투병생활을 도왔으며 남편을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고 합니다. 남편 구성봉은 지난 1988년에 별세했습니다. 이어 최선자의 조카가 가수 최진희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1970년~80년대에 전성기를 보냈던 그녀는 2000년대에 넘어와 ‘인어아가씨’, ‘아현동 마님’, ‘신기생뎐’등을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주목을 받았는데요. 특히 김일성 부인, 귀신, 무당 연기 등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당시 자신의 무당 연기를 위해 실제로 무당이 굿하는 굿판 옆에서 녹음해 연습하곤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최선자의 남편은 시인 구석봉 씨로 작가와 배우로 만나 1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고 하는데요. 남편 구석봉 씨는 동아방송 당선작가 출신으로 시·소설·드라마 극본·평론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작가였다고 합니다.
이어 최선자는 남편에 대해 “남편은 건장한 체격에 미남이었어요. 어려서부터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라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살았죠. 작가로서의 자부심도 강했어요.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남편이 어느 날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는가 했더니, 그 길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됐어요”라고 털어놓았는데요.
결혼 15년 만에 불치병에 걸리면서 아무리 검사를 해도 원인을 몰라 엑스레이를 찍어 미국으로 보내기도 했지만 끝내 병명을 밝혀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투병하던 남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늦은 출산을 결심했고, 주변의 많은 관심 속에 득남했다"고 밝히며 “아들을 낳았지만 심장이 좋지 않아 약 서너 달을 인큐베이터에 있었고 이후 집에서 간호하다 끝내 아들은 내 품에서 떠나갔다”라고 힘들었던 과거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이어 “남편이 고향에 존경하는 형이 있었는데 6ㆍ25 전쟁 전에 도망가기 전에 어떤 책을 맡기고 갔다고 한다”라며 “알고 보니 불온서적이었다. 그래서 어린 남편이 고문을 많이 당했다”고 돌아봤다. 초주검이 된 남편을 시부모님이 호랑이 새끼까지 잡아 먹여가며 겨우 살렸다고 했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이후 어린 시절 고문 후유증 등으로 더 힘든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고 하며 남편이 병실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며 해가 거듭될수록 빚이 쌓이기 시작하며 생계를 위해 연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그녀는 "9년 동안 남편의 병 수발을 들면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하고 남편의 상태는 점점 좋지 않아졌다. 내 마음도 변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는데요.
"너무나 마음이 아팠지만 남편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까지 생겼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런 감정이 생기더라. 극에 치닫는 감정을 느꼈다. 우울하다는 감정은 호사였다"라며 당시 힘든 상황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습니다. 최선자의 남편 구석봉 시인은 1988년 52세 나이로 별세했으며 홀로 두 딸을 키웠다고 합니다.
1961년 당시에는 TV가 없을 때라서 성우가 최고의 인기를 얻을 때였다고 하는데요. 1958년 중학교 3학년 대 동화낭독등 방송국에 출입을 시작으로 1961년 20세 때 MBC 성우극회 1기 성우로 입사하며 본격적인 성우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연극 무대까지 진출해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고 하며 특히 “대한민국 공연계에서 스트립쇼의 원조가 되는 춤을 춰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라며 ‘살로메’ 공연에서 7개의 베일을 하나씩 벗으며 마지막엔 반나체로 춤을 추는 관능적인 모습의 주인공을 연기했다고 하는군요.
성우로 시작해 아나운서, 연극 무대, 그리고 다시 드라마까지 진출 신인유망주로 급부상하며 문화부장관 ‘신인예술상’을 비롯 ‘동아연극상’ 한국연극영화상(現 백상대상) 등 상을 휩쓸며 명성을 날렸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현재까지 꾸준하게 드라마와 영화 연극무대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