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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자 나이 남자친구 홍상기 결혼(소속사대표 매니저) 본문
김연자 나이 남자친구 홍상기 결혼(소속사대표 매니저)
가수 김연자가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 11년째 진지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예비신랑을 최초 공개한다고 하며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이미 김연자는 소속사 대표와 열애 사실을 공개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이어 10년째 동거 중인 예비신랑이자 소속사 대표인 홍상기 씨를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 공개하며 카리스마가 넘치는 가수 김연자와는 다정하게 예비신랑을 부르는 예비신부 김연자의 일상을 공개한다고 하는군요.
김연자는 3월 예능 '강호동의 밥심'을 통해 매니저이자 연인인 홍상기 대표와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올가을 결혼하겠다는 계획을 밣히기도 했습니다.
김연자와 홍상기 대표는 과거에도 “4년째 열애 중이며 조만간 재혼을 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는데요. 김연자가 2012년 이혼 후 국내 복귀 과정에 난관에 부딪히며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낼 때 홍상기 대표가 김연자가 '아모르파티'로 재기할 수 있게 많이 도와줬다고 합니다.
이어 자신을 많이 배려해 주고, 굉장히 믿음직스럽다고 하며 “싸우는 건 한 가지밖에 없다. 술 때문이다”라고 고백하며 “남자친구는 술을 안 마시는데 저는 약간 마신다”라고 밝혔습니다.
김연자는 1982년 4월 18살 연상인 재일교포 김호식(오카 히로시) 씨와 결혼한 바 있으며 당시 그는 지휘자 겸 앨범 프로듀서, 김연자의 매니저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1977년 김연자가 19살에 홀로 일본으로 진출했을 때 한 방송에 출연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낯선 외국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모든 것들이 어렵고 힘들 때 전 남편 김호식이 김연자에게 다가와 한국말로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고 합니다.
당시 김호식은 밴드 지휘자였다고 하는데요. 김연자는 누군가와 한국말로 대화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반가웠다고 합니다.
어리고 힘들었던 김연자에게 김호식은 처음부터 호감이었으며 결국 김연자가 1980년 한국으로 귀국해서 가수 활동을 하고 1982년 4월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두 사이에는 자식이 없으며 아이에 신경 쓸 시간도 없고, 두 사람 다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아이를 가지지 않은 이유는 남편의 강요 때문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2012년 5월 이혼했으며 사유는 남편과의 성격차이로 인한 갈등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호식의 직업은 일본에서 색소폰 연주가 겸 밴드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클리어톤즈 단장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혼 후 김연자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데요. 일본에서 활동할 당시 전적으로 남편을 믿고 의지했던 김연자는 한창 바쁠 당시 자신의 개런티가 얼마인지 물어본 적도 없고 은행에 가본 적도 없이 오직 남편만 믿고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김연자는 "나는 내가 번 돈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하루에 1억 원 이상 번적도 있다. 대략 100억 엔(한화 약 1400억 원) 이상을 벌었다고 예상만 하고 있다“라고 고백하며 위자료 뿐 아니라 재산 분할 등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혼 후 김연자는 한국으로 빈털터리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김연자는 1959년 1월 25일생으로 62세이며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 출생으로 154cm, 47kg 학력은 수피아여자중학교,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졸업했습니다.
이후 1974년 동양방송에서 열린 '전국가요 신인스타쇼'에서 우승했으며 같은 해인 1974년 '말해줘요'라는 곡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김연자는 "아버지가 음치, 노래 잘하는 딸이 최고의 자랑이셨다"면서 "맨날 이발소에서 노래를 자꾸 시키셨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이발소에서 노래 부르며 자랐다"라고 고백했는데요. 그녀의 아버지는 김연자를 중학교 3학년 때 중퇴를 시키고 가수하라고 서울로 보내버렸다고 하며 당시 15살인 그녀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18살이라고 속이고 데뷔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가수로 활동하면서 밤업소에도 다녔다고 하는데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집안에 가장이 되었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두 동생 대학생활까지 뒷바라지했다고 하는군요.
그러던 중 1977년 19살에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데뷔를 하게 됩니다. 김연자는 “그 시절은 전쟁 같았다”라고 고백하며, 그러나 그 힘든 3년이라는 시간이 없었다면 일본에서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1980년 '노래의 꽃다발'이 한국의 음반 시장 최대 360만 장의 판매를 기록하게 됩니다.
다시 1984년 NHK홀 콘서트 라이브가 레코드가 한.일 동시 발매를 기점으로 동년도 '수은등'으로 한국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 1986년 길옥윤 작곡의 '아침의 나라에서'로 일본에서 다시 데뷔하게 되며 개사를 하게 된 이 곡은 일본에서도 대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이어 일본의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인 '홍백가합전'에도 총 3번이나 출전했으며 (1989년 '아침의 나라에서', 1994년 '흐르는 강물처럼, 2001년 '임진강'이란 곡으로 출전)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엔카 가수 중 한 명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김연자는 2009년 국내 무대 ‘10분 내로’라는 곡으로 복귀, 2013년 발표곡 EDM과 트로트를 결합시킨 ‘아모르파티’가 4년 만인 2017년 인터넷에서 재조명 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전 세대를 아우르며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가수 김연자는 일본 활동 당시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부른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극우 혐한 세력에게 위협과 핍박을 받기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김연자는 “나는 상관없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사람이니 당연하게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부르는 것이다. 그게 싫으면 내 콘서트에 안 오면 되는 것이다”라고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활동 당시 한국인이란 이유로 차별과 편견을 많이 받았지만 오로지 실력 하나로 모든 것을 이겨낸 가수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