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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회장 남편 김창홍 광원산업 성공기

달소다 2021. 3. 1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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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회장 남편 김창홍 광원산업 성공기

TV조선 예능 '아내의 맛'KAIST(한국과학기술원)에 역대 최고액인 766억 원을 기부해 화제가 된 이수영(1936년생,85) 광원산업 회장과 그의 남편 김창홍(1935년생, 84) 변호사가 출연, 신혼생활을 공개한다고 하는데요. 이수영 회장은 80년 넘게 독신 생활을 하다 서울대 법대 동기생 김창홍 변호사와 2018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수영 김창홍 부부는 앞서 방송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일상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이수영 회장은 남편은 저한테 지극정성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사과 깎아서 저한테 준다. 손잡고 산책도 한다라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은 8남매 중 막내로 (1936년생)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고 하는데요. 머리도 좋았던 이수영 회장은 경기여중, 경기여고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하지만 졸업 후 사법시험에 떨어지면서 1963년 기자 모집 공고‘를 보고 법대 동기들과 함께 응시, 이수영 회장 홀로 붙었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1963년부터 1980년까지 17년간 기자로서 활동했으며 주로 재계를 출입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서울신문견습 기자를 거쳐 한국경제신문의 전신인 현대경제일보’, ‘서울경제신문까지 언론사 생활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이수영 회장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목장으로 돈을 벌었다고 하는데요. ‘퇴직하면 농사를 지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경기도 안양에 땅을 사게 되었고 ((3.3m2)5, 10) 지인으로부터 돼지 두 마리를 선물 받게 되면서 목축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 당시 국가에서 낙농업 사업을 권장하기 위해 농가에 젖소를 분양했으며 이수영 회장은 10마리의 젖소를 받았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돼지 두 마리가 소 15마리, 돼지 1000여 마리 규모까지 커지게 되었으며 주말농장처럼 시작한 것이 낮에는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돌아와 외양간을 살피며 9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후 1980년 신문사를 퇴직하고(1979년 12·12 쿠데타 이후 신군부의 언론탄압이 시작, 그 당시 해직 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고 합니다) 목장 일에만 매달렸다고 하는데요. 시간이 흐른 뒤 목장 부지가 경인고속도로 나들목(IC)으로 수용되면서 목축업을 계속할 수가 없게 되자 모래 채취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목축업과 모래를 팔면서 큰돈을 벌기 시작한 이수영 회장은 모았던 돈으로 1988년 여의도 백화점 5층을 경매로 불하 받게 되었으며 당시 한 달 임대료만 2700만 원 이었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더욱 큰돈을 벌게 되었고 광원산업을 창업하여 관리하게 되었으며 이어 부동산 사업가로서도 성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까지도 이수영 회장은 광원산업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카이스트 발전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합니다.

 

이수영 회장은 평생을 모은 돈을 카이스트에 기부하며 큰 화제를 모았으며 지난 2012년(80억여 원)과 2016년(10억여 원) 미국 부동산을 유증한 것에 이어 지난 7월 23일 카이스트에 676억 원을 기부하며 모두 세 번의 기부로 총 기부액은 카이스트 개교 이래 최고액인 766억 원이라고 합니다.

 

특히 서울대를 졸업한 이수영 회장이 모교인 서울대가 아닌 카이스트에 766억 기부한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일제 강점기를 지낸 사람이다. 그때 감정이 아직 남아있다""일본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안 나왔다. 카이스트를 키우는 게 곧 국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수영 회장의 남편 김창홍 변호사는 1935년생으로 법무법인 이데아 소속으로 고등고시(지금의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되었으며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퇴임하였다고 하는군요.

 

이수영 회장과 남편 김창홍(84) 변호사는 서울대 법학과 동창이었으나 학창 시절에는 남편을 몰랐다고 합니다. 졸업 이후 십여 년이 지나 동창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 기부에 대해서도 남편이 오히려 이왕 마음 먹은 거 빨리 하라며 기부를 독려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자, 목축업, 모래 사업, 부동산 사업까지 뚝심과 도전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섰던 것 같은데요. 늦은 나이에 결혼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서는 "밤에 잘 적에 전깃불 꺼줄 사람이 없더라"라고 답했는데요. 이어 암을 두 번이나 앓게 되면서 건강을 잃었던 그녀에게 남편 김창홍은 시간되면 '약 먹었어?'하고 물 떠다 준다라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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