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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은이 (실제)나이 과거 이혼 자녀 본문
혜은이 (실제)나이 과거 이혼 자녀
이번 시간에는 혜은이의 데뷔부터 전성기, 그리고 두 번의 결혼 실패 등 그녀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가수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의 인생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혜은이는 본명 김승주이며 1954년 9월 15일 65세이며 제주도 출생이라고 합니다. 이후 7살 때 대전광역시로 이주 대전 선화초등학교, 대전 호수돈여자중학교, 대전 호수돈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75년 '당신은 모르실 거야'로 데뷔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빚보증과 생계형으로 가수생활 / 혜은이의 어머니는 연기자였으며 아버지는 인기 연예인의 산실인 '낙랑쇼'의 단장 겸 유명한 변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혜은이는 10대 중반부터 가정환경이 어려워졌다고 하는데요. 당시 혜은이의 아버지는 후배 보증을 섰다가 잘못되는 바람에 집에서 맨몸으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혜은이의 어렸을 적 꿈은 발레리나였다고 하는데요. 훈련이 너무 힘들고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도중에 그만두고 집안이 어려워진 그녀는 여고를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가족이 살던 대전에서 서울로 상경해 밤무대 무명가수로 활동을 시작해 가장 역할로 인한 생계형 가수로 살았다고 합니다.
혜은이는 무교동에서 월드컵이라는 극장식 홀에서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행사만 쫓아다니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빨리 세월이 가서 나이 들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혜은이의 전성기 / 혜은이는 작고 귀여운 외모에다 춤과 노래 실력까지 갖춘 가수로 당시 큰 인기를 누리는 가수였는데요. 혜은이라는 이름은 성 없이 글씨가 동글동글하니 예뻐서 쓰게 되었다고 하며 최초의 한글 이름이라고 합니다. 혜은이는 1975년 작곡가 길옥윤에 의해 캐스팅되어 데뷔곡 '당신은 모르실 거야'를 시작으로 '진짜 진짜 좋아해', '당신만을 사랑해', '제3한강교'등 연달아 곡들을 히트시켰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곡들을 히트시키며 '혜은이 신드롬'을 낳았는데요. 그녀의 패션과 노래 등 혜은이가 하는 모든 것들이 관심과 함께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 인기로 1077년 10대 가수상, 가수왕, 최고 인기사수상등 3사의 대상을 휩쓸게 되면서 1982년을 제외한 1983년까지 MBC10대 가수상, KBS 가요톱텐 골든컵 수상을 하게 됩니다. 혜은이의 인기는 노래뿐 아니라 영화계에도 진출하여 성공했으며, 광고모델, DJ 등으로 도 그녀의 인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녀의 전성기로 인해 한 달 소득이 당시 아파트 서너 채 값이었으며 보너스로 승용차 한 대가 생길 만큼 당시 인기 가수들 중에서도 가장 수입이 많은 가수였다고 합니다.
악성루머 / 그때 그 시절에도 루머는 존재했는데요. 그중에 故 길옥윤과의 악성 루머로 많은 상처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故 길옥윤은 가수 현인의 노래 '내 사랑아' 패티김의 곡인 '4월이 가면', '사랑하는 마리아', '서울의 찬가'등을 작곡한 작곡가이자 패티김의 전 남편이기도 합니다.
혜은이는 MBC '기분 좋은 날'에 출연하여 활동을 중단할 뻔한 루머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혜은이는 "대상을 받은 후 길옥윤 선생님이 기뻐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혔는데 그것을 보고 사귄다고 하더라"라며 "어느 날 옷을 잘못 사서 딸에게 대신 바꿔오라고 했더니 옷 가게 주인이 '혜은이는 길옥윤과 살 때가 제일 좋았지'라는 말을 했다더라"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혜은이의 딸은 '진짜 길옥윤 아저씨와 사귄 거냐'라고 물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너무 화가 났다고 밝히며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거라 생각한다"라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내가 듣는 것은 괜찮은데 우리 아이가 듣는 건 정말 참을 수 없었다. 가수를 그만두고 싶었다"라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수많은 루머들이 생겨나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습니다.
무명시절 / 혜은이는 데뷔하지 마자 성공한 가수인 것 같지만 그녀에게도 4년여 정도의 무명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고 하는데요. 더해서 가장 역할로 인한 생계형 가수이다 보니 힘들고 바쁜 탓에 한동안 노래를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부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혜은이의 첫 번째 결혼 ,30년 만에 찾은 딸 / 혜은이는 가수 활동을 하던 중인 1984년 3월 연상의 사업가인 최정수 씨와 결혼했지만 결혼 5년 만에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게 됩니다. 전 남편과 혜은이는 11살 나이 차이로 결혼 발표 당시 임신 5개월인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혼으로 인해 딸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고 하는데요. 혹시 딸이 자신의 얼굴을 잊으면 어쩌나 싶어 계속 활동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그 당시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준 게 딸이었으며 그 마음으로 30년을 기도해서 다시 딸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혜은이와 남편 김동현 / 혜은이는 70년 대 후반부터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중 활동 영역을 넓혀 연기까지 도전하게 됩니다. 그때 혜은이의 상대역이 신인배우 김동현이었으며 드라마를 찍으며 상대역인 혜은이를 남몰래 좋아했다고 하는군요. 이후 혜은이가 이혼을 겪고, 김동현의 적극적인 구애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남편 김동현의 사업실패로 인해 생긴 빚이 50~60억이었으며 지금 돈으로 200억 원이었다고 하는데요. 그 돈을 갚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고 그로 인해 15년 정도 방송 활동을 못 하게 됩니다. 당시 혜은이는 돈 생기는 일은 어디든지 가서 해야 했다고 하는데요. 상황이 너무 다급하니 죽고 사는 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이어 혜은이가 방송 출연을 하면 바로 빚 독촉 전화가 와서 방송 출연도 힘들었다고 하는군요.
너무 힘든 탓에 죽으려고 약을 가지고 다닌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힘든 와중에도 빚이 줄어가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김동현은 1975년 MBC 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으며, 영화 ‘마지막 겨울’ 드라마 ‘제1공화국’, ‘여명의 눈동자’, ‘일지매’, ‘대조영’등에 출연했습니다. 이어 2012년 2016년 사기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2018년, 2019년에도 금전 문제를 겪었습니다.
결국엔 두 사람이 30년 결혼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미 지난해 7월쯤 가정법원 협의를 거쳐 이혼을 한 상태라고 합니다. 이혼은 남편인 김동현의 요청이었다고 하는데요. 너무 많이 고생시킨 것이 미안하고 이제라도 좀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혜은의 자녀 딸과 아들 / 김동현과 결혼한 후 아들을 낳았으며 김동현의 사업 실패로 인한 잘못을 반성하는 보답으로 혜은이는 전 남편과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게 된 딸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30년 만에 프랑스에서 공부 중이던 딸과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이혼을 겪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혜은이에게 딸은 “이젠 딸, 엄마, 아내가 아닌 ‘가수 혜은이’의 삶과 행복을 찾기 위해 살아갈 것”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는데요. 늘 힘들고 지쳐있는 상황 속에서도 항상 밝은 웃음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던 혜은이었습니다.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녀의 밝은 웃음만큼 행복한 삶이 되길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