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장가현 나이
- 정소녀 리즈
- 임성민 시어머니
- 정소녀 이혼
- 장가현 이혼
- 인순이 딸 박세인
- 김소현 아들
- 김새롬 결혼
- 인순이 과거
- 이경진 어머니
- 장가현 조성민
- 장가현 남편
- 현진영 어머니
- 인순이 딸
- 방은희 아들
- 임성민 프로필
- 방은희 프로필
- 장가현 프로필
- 현진영 아내
- 배우 정소녀
- 라이머 학력
- 이경진 유방암
- 인순이 나이
- 이혜정 남편
- 라이머 부인
- 김소현 아버지
- 정소녀 딸
- 김소현 남편
- 정소녀 프로필
- 김소현 나이
- Today
- Total
소소랑
박칼린 나이 과거 집안 본문
박칼린 과거 집안 아버지
이번 시간에는 대한민국 뮤지컬 음악감독 1세대인 한국계 미국인 뮤지컬 음악감독 및 연출, 배우로 활동 중인 박칼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칼린의 본명은 Kolleen Sue Park (칼린 수 팍), 한국명은 박영미이며 미국 국적으로 1967년 5월 1일 53세입니다.
학력은 초량초등학교, 경남여자고등학교, 캘리포니아예술대학 첼로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악작곡 (석사) 졸업했으며 28세의 나이에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감독으로 데뷔했습니다.
이전에는 1989년 미주 MBC 가요제 참가해 대상을 수상한 이력도 있으며 당시 참가곡은 박칼린의 자작곡인 ‘사막의 비’라는 곡이었다고 합니다.
박칼린은 가요제 무대에 인터뷰할 당시 부산 사투리를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어린 시절 부산 지역에서 자라 부산 사투리와 지역 문화를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이어 원래 부산 사투리를 사용하던 그녀는 한국에서 연기를 하며 표준말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박칼린의 어린 시절 ☆
박칼린은 한국인 아버지 박근실 씨와 미국으로 이주한 리투아니아계 이민자 어머니 아이린 씨 사이에서 태어난 3녀 중 막내였다고 하는데요.
미국에서 태어난 박칼린은 한국어를 배우기를 원했던 어머님의 뜻에 따라 3살 때 부산으로 온 가족이 귀국했다고 합니다.
특히 어학을 전공한 박칼린의 어머니인 아이린 씨는 자식들이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잘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10살까지 부산에서 살았으며, 다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이주하여 LA 헐리웃 지역에서 성장했습니다.
이어 고등학교 때 1년 동안 부산 경남여자고등학교를 다녔으며 다시 미국으로 가서 고등학교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클래식 첼로 전공)을 졸업했습니다.
특히 정체성 혼란으로 힘들어하던 때에 음악에 몰두하며 극복했다고 하는데요. 중학교 시절 첼로를 접하게 되면서 대학에서까지 전공을 하게 됩니다.
박칼린은 어린 시절 첼로와 노래에 재능을 보여 일찌감치 음악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하는데요. 그녀의 언니들은 "우리 다 음악에 소질이 있었지만 박칼린의 소질이 너무 좋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항상 “다 해봐라”라고 하며 “성공을 하든 말든 고른 길에 네가 최선만 다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당시에도 생소했던 아시아 퓨전 재즈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고 하는군요.
박칼린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음악과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했으며 그전에 한국에 살 때 한국무용을 배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스스로 언어적으로는 영어가 더 편하고 정서적으로는 한국인에 가깝다고 말하였는데요. 클래식과 국악을 모두 전공하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예술적으로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특히 판소리의 명창인 박동진의 제자였으며, 박동진이 그녀를 자신의 판소리 직계 전수자로 삼고자 했으나 박칼린이 한국 국적이 아닌 외국 국적이었기 때문에 성사되지 못해 매우 서운해하였다고 합니다.
박칼린의 아버지, 어머니 ☆
그녀의 아버지 박근실 씨는 1950년대에 미국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유복한 집안의 엘리트 학생이었다고 하며 키가 190cm가 가까울 정도로 건장한 체격이었다고 합니다.
이어 박칼린은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부산을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라고 설명하며 할머니 역시 잘 사셨다고 하는군요.
미국으로 유학 간 아버지와 5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리투아니아계 이민자인 어머니가 만나게 되었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놀리기 위해 아버지 앞에서 노래한 아리랑을 계기로 인연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녀의 뛰어난 음악적인 재능을 그녀의 노력과 새로운 도전,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를 통해 더욱 깊어진 것 같은데요.
그렇게 28세의 나이에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감독으로 데뷔하며 ‘사운드 오브 뮤직’, ‘시카고’, ‘렌트’, ‘페임’ 등 쟁쟁한 작품의 음악을 담당하고 연출자로도 지금까지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두려워하지 않은 도전과 지치지 않은 열정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