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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백만장자 권동칠 나이 프로필 트렉스타 회장 대표 신발 성공 비결 본문
이웃집 백만장자 권동칠 나이 프로필 트렉스타 회장 대표 신발 성공 비결
권동칠 회장
트렉스타 권동칠 나이


2026년 5월 6일에 방송된 EBS 1TV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 출연한 트렉스타 권동칠 회장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올해 (2026년 기준) 나이 71세임에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권동칠 회장(대표)은, 세계 최초 경등산화를 개발하며 연 매출 수천억 원대의 글로벌 기업을 일군 대한민국 신발 역사의 주인공인데요.
오늘은 71세라는 권동칠 나이가 무색한 열정 가득한 프로필부터, 1988년 창업 이후 신발 하나로 세계 시장 점유율 아시아 1위를 달성한 성공 비결, 그리고 현재 재산과 근황까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목차
- • 권동칠 나이·프로필·고향
- • 권동칠 회장 신발 트렉스타 창업과 성공
- • 권동칠 경등산화, 기능성 군화 개발
- • 권동칠 회장의 IMF 실패와 재기
- • 권동칠 신창원 사건으로 신발 전량 폐기
권동칠 나이 프로필 (트렉스타 대표 회장)

- 이름: 권동칠
- 소속: 트렉스타 (대표이사 회장)
- 권동칠 나이: 1955년생으로 올해 71세 (만 70세)
- 고향: 경북 예천
- 주요 경력: 현 트렉스타 회장, 제26대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세계 최초 경등산화 및 네스핏 기술 개발
권동칠 회장 "신발밖에 모르는 바보" 자수성가 백만장자의 시작


권동칠 나이 20대 시절, 그는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신발을 만들던 OEM 공장의 영업사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신발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한국은 우리만의 브랜드가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권동칠 회장은 결국 1988년 성호실업(현 트렉스타)을 설립하며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고, 전 세계인의 발을 편하게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기술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권동칠 성공 신화 만든 경등산화 이야기



권동칠 회장이 백만장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역발상'에 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등산화는 무조건 무겁고 딱딱한 가죽이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 권동칠 회장 세계 최초 '경등산화'의 탄생:
권동칠 나이 30대 시절, 그는 무거운 가죽 대신 가볍고 질긴 천 소재를 활용한 '경등산화'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등산화는 무거워야 안전하다"는 편견을 깨고 가벼운 신발을 내놓자, 전 세계 등산 마니아들이 열광하며 트렉스타는 단숨에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했습니다.
・ 권동칠 신발 시장의 판도를 바꾸다:
단순히 가벼운 것을 넘어, 산악 지형에서 발목을 보호하면서도 운동화처럼 편안한 착용감을 구현한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아웃도어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적인 사건이었으며, 오늘날 트렉스타가 세계 60여 개국에 수출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권동칠 회장이 만든 기능성 군화 이야기



권동칠 나이 20대 시절, 그는 군 생활 중 부사관을 지원해 '단기 하사'로 복무할 만큼 군대 체질이자 열혈 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괴로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딱딱하고 무거운 '봉제식 전투화'였습니다.
행군만 하면 발에 물집이 잡힐 정도였고, 이를 지켜보며 “나중에 신발 회사를 차리면 후임들만큼은 발 편한 군화를 신게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그 무모해 보이던 다짐이 40년 뒤 현실이 된 것입니다.
이후 트렉스타를 창업한 권동칠 회장은 약 4년간의 연구 끝에 기능성 전투화 개발에 성공했고, 2011년부터 고어텍스 소재와 네스핏 기술을 적용한 기능성 군화를 국군에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전투화보다 가볍고 통기성과 방수 기능까지 강화되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 네스핏 기술: 2만 명의 발 모양을 분석해 맨발에 가장 가깝게 설계.
- 경량화: 기존 전투화보다 약 130g 이상 가볍게 제작.
- 퀵 레이싱(Quick Lacing): 전투화 끈을 한 번에 당겨 맬 수 있는 특허 기술로 기동성 확보.


특히 권동칠 회장은 “전투화는 장병들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철학 아래 수익보다 품질을 우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단가 부담이 큰 값비싼 방수 소재와 특수 밑창 역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이러한 고집이 현재 트렉스타 기능성 군화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국군뿐만 아니라 스페인, 인도 등 세계 강군들이 트렉스타의 군화를 수입해 신고 있습니다. 권동칠 나이 일흔이 넘어서도 "우리 장병들 발 편한 게 최고"라고 말하는 그에게 '전투화의 아버지'라는 수식어는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권동칠 회장의 IMF 사업 실패와 재기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당시 권동칠 회장은 거래처 부도까지 겹치며 약 70억 원의 빚을 떠안는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당시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의 성실함을 믿었던 영국 파트너사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권동칠 회장은 “신발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위기를 딛고 재기에 성공했고, 현재까지도 검소한 생활과 사회 환원을 이어가며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권동칠 회장이 신창원 사건으로 수십억 손해 본 이유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서 공개된 이야기 중 가장 놀라움을 안긴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신창원 사건과 관련된 일화였습니다.
당시 권동칠 회장의 트렉스타는 대규모 개발비를 들여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탈옥 후 도주 중이던 신창원이 트렉스타 신발을 신고 산을 넘나드는 모습이 알려지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이후 일부에서는 “신창원도 신은 튼튼한 신발”이라는 이야기가 퍼졌지만, 권동칠 회장은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이미 제작된 신제품 전량을 출시 직전에 과감하게 폐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웃집 백만장자가 말하는 '부의 철학'과 재산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서 공개된 권동칠 회장의 삶은 화려함보다는 '본질'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 재산 규모: 구체적인 숫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연 매출 수천억 원대를 기록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의 오너로서 압도적인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성공 비결: 그는 "돈을 쫓지 말고 가치를 쫓으라"고 말합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하고, 기술력을 끝까지 고집한 것이 결국 거대한 부로 돌아온 것입니다.
권동칠 나이 잊게 하는 끊임없는 도전과 근황




일흔이 넘은 권동칠 나이에도 그는 매일 아침 신발 끈을 조여 맵니다. 현재 트렉스타는 전 세계 60여 개국에 수출하며 글로벌 아웃도어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돈이 많은 자산가를 넘어,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장인형 백만장자' 권동칠 회장. 그의 열정적인 모습은 은퇴를 고민할 나이의 많은 시니어들에게는 희망을, 젊은이들에게는 도전 정신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자산가를 넘어 자신의 분야에서 기술력과 고집으로 성공을 일군 ‘장인형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권동칠 회장. 지금도 현장을 누비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