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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성 나이 프로필│코미디의 거장 고향,가족 딸 전제비·부인 진미령 그리고 마지막 길까지 본문
전유성 나이 프로필│코미디의 거장 고향,가족 딸 전제비·부인 진미령 그리고 마지막 길까지
한국 코미디의 거장 전유성. 그의 나이와 프로필부터 딸 전제비, 부인 진미령, 전부인과 가족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길까지. 웃음을 남기고 떠난 전유성의 발자취를 따라가봅니다.
🕊️ 전유성 나이 프로필
⭐ 전유성 나이 프로필│대한민국 코미디의 살아있는 역사
전유성은 1949년 1월 28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태어났습니다.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대한민국 코미디의 역사이자 기둥 같은 존재로 남았습니다.
1967년 무대를 시작으로 코미디언, 방송인, 공연 기획자, 그리고 작가로서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한국 예능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유의 풍자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1970~1980년대 TV 코미디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웃으면 복이 와요’, ‘전유성의 코미디세상’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재치와 풍자로 대중에게 웃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방송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의 문화 활성화에도 힘썼고, 남원과 문경 등에서 코미디 페스티벌을 기획하며 후배 개그맨들의 무대를 만들어주는 선배로 기억됩니다.
🌱 전유성 어린 시절의 꿈과 개그맨이 되기까지
전유성은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재능이 있었지만, 사실 처음부터 개그맨이 꿈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릴 때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거울을 보며 자신이 배우 황해 선생님을 닮았다고 느꼈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시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길은 탤런트, 가수, 코미디언 세 가지뿐이었고, 전유성은 먼저 탤런트 시험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네 차례나 탤런트 시험에서 낙방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예쁜 여자 지망생들에게만 질문을 던졌고, 나에게는 ‘키가 몇이냐’고만 물었다”며 특유의 유머로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가수를 하기에는 노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코미디를 해야겠다 생각했고, 지금까지 웃음을 만들며 살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유성은 코미디언의 길로 들어섰고, 그 선택이 훗날 그를 한국 개그계의 대부로 만들었습니다.
🎤 전유성 데뷔와 활동│한국 개그의 흐름을 만든 사람
🔸 전유성 데뷔
전유성은 서라벌예술대학교 연극연출과를 졸업하고 1968년 TBC 방송작가로 방송계에 발을 디뎠습니다. 이듬해 MBC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정식으로 코미디언으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유머 1번지’, ‘쇼 비디오자키’, ‘개그콘서트’ 등 한국 코미디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시대를 대표하는 개그맨으로 사랑받았습니다.
그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주류이던 시절에도 몸의 움직임보다 말과 재치로 웃음을 만드는 언어 개그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KBS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개그콘서트’의 원안을 제시한 인물로도 유명하며,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방송계에 널리 퍼뜨린 주역이기도 합니다.
☀️ 전유성 후배 양성과 지역 문화 활동
전유성은 후배 코미디언 양성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습니다.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연기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조세호, 김신영 등 수많은 후배 코미디언들을 길러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웃음은 진심에서 나온다”는 말을 자주 남겼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방 문화 활성화에도 힘써 경북 청도와 전북 남원에서 ‘코미디 철가방극장’을 운영하며 지역 축제와 공연을 이어갔습니다.
2013년에는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명예위원장으로 위촉되어 한국 코미디 발전에 헌신했습니다. 그의 제자들과 후배들은 지금도 그를 ‘개그계의 대부’로 부르며 존경을 표하고 있습니다.
👪 전유성 가족 이야기│전유성 딸 전제비와 부인 진미령
전유성은 슬하에 딸 전제비 씨를 두었습니다. 딸 전제비 씨는 “아버지는 늘 웃음을 가르쳐주신 분이었다”는 말을 남기며 아버지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켰습니다.
또한 전유성은 가수 진미령과의 인연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은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사실혼 관계로 함께하며 예술적 교감 속에서 서로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진미령은 생전 전유성에 대해 “늘 유머로 사람을 감싸던 따뜻한 분이었다”고 전했습니다.
🏡 전유성 고향과 사람들│웃음을 전한 인생의 무대 여기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전유성의 마음은 늘 전북 남원 인월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자연과 사람, 그리고 웃음이 함께하는 곳이 진짜 무대”라 말하며 지방 공연과 코미디 페스티벌을 직접 기획했습니다.
전유성은 오랜 세월 폐기흉으로 치료를 받아왔으며, 2025년 9월 25일 향년 76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장지는 바로 그가 사랑했던 남원 인월면으로 정해졌습니다. 고향을 무대로 남긴 그의 유머와 따뜻한 마음은 그곳엔 지금도 그가 남긴 무대와 웃음의 흔적이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그는 생전에 “웃음이 사라진 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무대”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 말처럼, 끝까지 웃음을 전한 예인의 삶이었습니다.
전유성 프로필│코미디의 거장, 나이·딸 전제비·부인 진미령 그리고 마지막 길까지 한국 코미디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전유성이 남긴 웃음과 따뜻한 유머는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전유성의 진심과 열정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