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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몬 막내 아들 부인 가족 아내 결혼 나이 프로필 학력 본문
진시몬 막내 아들 부인 가족 아내 결혼 나이 프로필 학력
가수 진시몬이 최근 유튜브 채널 ‘배짱이 엔터테인먼트’에 출연하여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막내아들에 대해 고백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먹먹함을 전했습니다.
진시몬은 “ 혼자 있다가 심장마비가 왔는데 너무 늦게 발견했다”며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응급실에 갔을 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고 말하며 “그래서 가는 모습을 못 봤다. 손잡고 마지막 이야기도 못 해서 너무 미안하다”며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진시몬(55)은 아내 배지후씨와 결혼해 슬하에 2남을 두고 있으며 큰아들은 변호사이고 작은아들을 필리핀에서 의류 사업을 시작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막내 아들에 대해 “어렸을 적 막내아들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말하며 나중에 노래가 좀 더 잘되고 난 후 4000만 원짜리 전세방을 잡고 아들을 키웠고, 이후 아내와 아들들은 유학을 떠났다고 합니다.
진시몬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러다 아들이 원해서 유학 보내고 뒷바라지를 했다. 아내가 큰아들과 막내아들을 데리고 필리핀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모두 잘 적응했고 사회생활도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들이 옷을 디자인하고 직접 만들어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게 성공했다. 26살에 아파트도 사고 차도 샀더라."며 ”아들이 특히나 돈에 집착했다. 내가 열심히 돈을 벌어야 변호사인 형과 동등해질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자라면서도"왜 형만 신경 쓰고 나만 신경도 안 써"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진시몬은 그간 서운함을 내비쳤던 아들에게 미안함과 아들에게 외로움은 없는지 묻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라고 토로하며 항상 아들과 함께할 것이라 생각하며 아들을 위해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뭉클함을 자아냈습니다.
가수 진시몬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릴 적 생활고로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의 어머니는 삼남매를 키우며 자식들을 위해 일만 하셨다고 합니다.
이어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로 활동했다고 하며 신문 기자가 되고 싶었던 진시몬은 법대를 들어가게 되지만 1989년 ‘강변가요제’를 나가면서 가수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학력 : 제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졸업), 제주대학교 법정대학 (법학 / 학사))
이후 발라드곡인 '낯설은 아쉬움'과 ‘바다를 사랑한 소년을 발표’했지만 큰 반응이 없었다고 하며 1994년 김병룡의 눈에 띄어 ‘녹색지대’를 결성해 곽창선과 함께 활동하며 ‘사랑을 할 거야’, ‘준비없는 이별’, ‘끝없는 사랑’ 등 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녹색지대를 탈퇴하며 긴 공백기를 가져야만 했지만 1990년대 후반에 ‘애수’라는 곡으로 트로트 장르를 시도하며 1996년 KBS 2 ‘며느리 삼국지’의 주제가를 불러 사랑을 받은 바 있으며, 2022년에는 K-문화예술대상 성인가요부문에서 최고 인기가수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게 된 계기에 대해 “원래 세미트로트 장르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날 김범룡 선배님이 한 번 보자고 하더니 ‘시몬아 넌 세미트로트가 어우릴 것 같다’고 조언해주시더라. 그래서 바꾸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김범룡 형님께서 내가 데뷔할 때부터 이끌어주셨다"면서, “반지하 생활을 하던 시절 벌이가 없었다. 그때 김범룡 형님이 월세를 내줬다”라며 "음악작업을 전수해주셔서 지금도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김범룡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김범룡과 진시몬은 서로 어려울 때 큰 힘이 되어주며 현재까지 돈독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진시몬이 트로트 가수로 자리매김 하기까지 칫솔 살균기와 치약 압출기 등을 생산 유통하는 벤처사업, 커피숍까지 여러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때 어린 나이에 칫솔 살균기라는 아템으로 벤처기업을 했는데 사업이 좀 잘됐다. 제 또래 친구들, 23살·24살들과 젊은 패기로 돈을 걷고 많이 빌렸다"며 "잠실에 본사가 있고, 안양에 공장이 있고, 전국에 지사만 12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 이후 공장에서 덤핑 물건이 나와서 가격이 흐려졌다. 지사 컴플레인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수표, 어음이 다 부도를 맞았다"며 "5년간 빚을 갚느라 열심히 노래했다. 빚을 다 갚고 나니 통장에 1천만 원이 남았다. 그 이후에 제주 향토음식점으로 식당 사업이 성공했다"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