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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 나이 아내 재혼 박영미 결혼 가수 프로필 이혼 저작권료 본문
최성수 나이 아내 재혼 박영미 결혼 가수 프로필 이혼 저작권료
이번 시간에는 1983년에 '그대는 모르시더이다'로 데뷔한 이후 풀잎사랑` `동행` `기쁜 우리 사랑은` 등 발표하는 곡마다 국민적인 사랑을 얻었던 가수 최성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수 최성수는 서울 출생, 1960년 3월 25일생으로 64세이며, 학력은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교 뮤지컬학과 학사. 미국 어메리칸 뮤지컬 앤드 드라마틱 아카데미 음악대학원 음악연출학과 음악학 석사 출신입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며 가족으로는 아내 박영미 씨와 슬하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1997년 미국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 음대에서 유학 중이던 최성수는 지금의 아내 박영미 씨를 만나게 되는데요. 당시 박영미 씨는 지인들에게 최성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면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박영미 씨는 최성수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최성수에게 연락을 했다고 하는데요. 적극적인 성격의 박영미 씨는 최성수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나는 당신 팬이 아니고, 사실 노래도 잘 모른다. 그런데 라디오를 듣다 보니 정말 좋은 사람 같더라. 같이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후 하루에도 여러 번 통화를 했으며 박영미 씨가 최성수가 있는 미국으로 찾아가 만나게 되면서 좋은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최성수는 1983년 MBC 분장사와 결혼했지만 6개월 만에 이혼한 상태였으며 이혼 사유는 성격차이인 것을 알려졌습니다.
아내 박영미 씨 역시 1990년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상태로 가족들의 반대와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은 조심스러웠다고 하는데요.
당시 아이들의 나이가 12살, 10살이었지만 최성수와의 관계도 좋아 어렵지 않게 가족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3번의 유산 끝에 2002년 막내 최동현 군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최성수와 결혼할 당시 박영미 씨는 스포츠 의류 사업을 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빌라 건축 사업(마크힐스 시행사)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때 박영미 씨가 운영하는 회사가 장동건·고소영의 신혼집으로 화제를 모은 흑석동 마크힐스 시행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성수의 아내 박영미 씨가 수백억 대 자산가라는 소문이 돈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후 박영미 씨와 가수 인순이가 오랫동안 소송전을 벌이며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요. 두 사람은 친하게 지내던 사이로 가수 인순이가 박영미 씨에게 수십억원을 투자했지만 원금과 수익금은 받지 못하며 박영미 씨를 고소하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박영미씨는 방송을 통해 "저한테 준거는 20억이 넘고 제가 소개해준 사람한테도 20억원 줬더라. 그런 뒤 인순이 씨가 원하는 게 그림이었다. 그래서 앤디워홀 그림 두 점으로 변재했다"고 말하며 "인순이 씨가 그림으로 받으면 현금을 숨길 수 있고 여러면으로 좋다고 생각하더라. 그래서 그림으로 줬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인순이의 남편은 제작진과 전화연결을 통해 "그림은 받은 것이 아니라, 빚을 갚기 전 그림으로 대신 가지고 있던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최성수는 1986년 첫 번째 앨범 남남, 애수를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의 앨범 ‘동행’까지 연이어 히트를 기록하며 스타 반열에 올라서게 됩니다.
그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풀잎사랑, 공룡 선생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최성수의 대표곡들은 풀잎사랑, 동행, 해후, 잊지 말아요, 애수, 후인, 남남, 이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장미의 눈물, 그대는 모르시더이다, 얼마나 좋길래‘등이 있습니다.
그렇게 싱어송라이터이자 가수로 인정받던 최성수는 1995년 돌연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요.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날 알아요’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그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다. 발라드 가수가 설 데가 없었다"고 말하며 방송 중 상처 받은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는데요.
그는 "라디오DJ를 할 때였는데, PD가 대학 어디 나왔냐고 물어보더라. 못 갔다고 하니 PD가 마이크가 켜진지 모르고 '대학도 안 간 분이 DJ를 하시네'라고 했다"라며 "그 말에 너무 상처를 받았다. 대학을 못 간 열등의식, 배움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기분이 안 좋더라"라고 털어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이혼을 했다. 그리고 제가 그 당시 옥수동에 살았다. 집에서 성수대교가 보였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성수대교가 붕괴됐다"며 갑자기 유학을 가게 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노래를 쓰는 사람으로서 공부를 통해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당시 '풀잎사랑'뿐만 아니라 '남남', '애수, '해후', '동행' 등 80년대 히트 메이커였던 최성수는 저작권료에 대해 "꽤 된다. 그걸로 생활도 하고 미국 유학도 다녀왔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