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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민 아나운서 남편 마이클 엉거 나이 배우 프로필 결혼 집안 본문
임성민 아나운서 남편 마이클 엉거 나이 배우 프로필 결혼 집안
임성민은 서울 출생, 1969년 7월 8일생 55세이며 키 170cm, O형, 학력은 서울학동초등학교, 언주중학교, 정신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졸업),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연기자의 꿈을 포기, 3년 뒤 1994년 KBS 공채 20기 아나운서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임성민은 2011년 서강대학교에서 영화제작을 지도하는 미국인 마이클 엉거(1964년생)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자식은 없습니다.
임성민과 남편 마이클 엉거는 2008년 임성민이 한 달 동안 뉴욕 여행을 갔다가 지인의 소개로 당시 학교 학장이었던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이후 마이클이 한국으로 출장을 와서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첫만남 당시 임성민에게 첫 눈에 반했던 마이클 엉거는 임성민을 만나기 위해 그 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출장을 자처해 한국을 찾으면서 인연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당시 임성민은 행사 사회자였고 남편 마이클은 영화 세미나에 참석차 오게 되면서 만나게 되었다고 하며 3년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임성민은 "2010년 남편이 프러포즈를 하면서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했다“라고 밝혔는데요. 남편 마이클은 임성민을 위해 한국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임성민은 마이클 엉거와의 결혼에 대해 “중요한 결정은 아버지가 다 하셨다. 학교, 전공도 아버지가 정하셨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되지 않나. (남편도 정하실 테니) 결혼을 안 해야겠다 싶었다. 일로 성과를 내려고 미친듯이 달렸다. 남편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상대방을 안 만났으면 지금까지 결혼 안 했을 것 같다"라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자녀 계획에 대해 "다른 집에 비해 압박은 없었다. 보통은 시댁에서 바라지 않나. 언젠가 시어머니와 얘기를 하는데 '자녀 계획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더라. 지금 나이에 애를 낳으면 감당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시더라. 현실적인 이유,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안 낳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임성민(53)의 남편 마이클 엉거(56)는 브라운대학교를 졸업하고 콜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전공한 엘리트라고 하며 현재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임성민의 시부모님의 집안이 재력가라고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이에 "여러분들도 많이 드셔 보셨을 거다. 포테이토칩이라고 노란색 봉지에 들어있다“며 시어머니가 미국 유명 포테이토칩 회사(‘레드닷’) 전신 기업 창업주의 외동딸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식품회사 ‘레드닷’ 그룹은 1938년 설립된 감자칩 전문생산회사로, 유명 감자칩 '레이즈(LAYS)'를 생산하는 회사의 전신이며 이후 1961년 'H.W 레이 앤 컴퍼니'에 인수됐다고 합니다.
임성민은 "남편이 연애할 때까진 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 변호사고 시어머니는 화가라고 얘기했다"며 "그 정도 알고 있었는데 결혼이 결정되고 날을 잡으니 집안에 대해 이야기해주더라. 그전까지는 몰랐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녀는 "시부모님께서 부유하게 잘 사는 정도다. 미국에선 다른 분들도 다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너는 너, 나는 나' 이런 마음이 있다. 못 줘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도와주지 않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연기자를 꿈꿨던 임성민은 1991년 KBS의 14기 공채 탤런트로 합격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하지 못하고 1994년 KBS 공채 20기 아나운서에 합격하면서 아나운서 임성민으로 얼굴을 알리게 됩니다.
이후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임성민은 예능 프로의 MC를 맡게 되면서 그동안 발휘하지 못했던 끼를 발휘하며 최초의 ‘아나테이너’ 타이틀을 거머쥐며 많은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MC로서 많은 사랑을 받던 임성민은 7년 만인 2001년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연기와 MC를 겸업했으며 연기에 대한 열정과 헐리우드 진출이라는 목표를 위해 50세에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요. 당시에 대해 “2018년에 가서 매니지먼트 에이전시 계약도 했다"며 "할리우드로 가기 위해 유학을 떠났고, 뮤지컬 ‘그린카드’에 출연하며 뉴욕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임성민은 “공부한다고 했을 때 정말 반대를 안 했다. 오히려 가라고 했다"라며 남편의 응원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