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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김 나이 결혼 남편 이탈리아 딸 가수 전남편 길옥윤 본문
패티김 나이 결혼 남편 이탈리아 딸 가수 전남편 길옥윤
가수 패티김은 경기도 경성부 (現 서울특별시) 출생, 본명은 김혜자이며 나이는 1938년 2월 28일 84세, 학력은 중앙여자고등학교 (졸업), 1958년 미 8군 무대로 데뷔했습니다.
패티김은 1966년 길옥윤과 결혼해 슬하에 1녀(정아 게디니 윌리엄스 / 1968년 11월 13일생)의 자녀를 두었으나 1973년에 이혼했으며 이후 1976년 이탈리아 사람인 아르만도 게디니(Armando Ghedini)와 재혼하여 1978년 둘째 딸 카밀라 게디니(Camila Ghedini)를 낳았으며 현재까지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수 패티김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여가수이자 디너쇼의 여왕으로 불리우며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디바로 현재까지 그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패티김은 정식 데뷔 전인 1956년 국무총리배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입상하여 데뷔하였으며 2년 후에 미8군 무대에서 가수 이해연과 듀엣으로 가수 데뷔하게 됩니다.
데뷔 당시 ‘린다 김’으로 활동하다 1959년 초에 미국의 여가수 패티 페이지와 같은 명가수가 되고 싶다는 뜻에서 현재의 예명으로 바꾸어 활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960년, 일본 정부에 의해 직접 초청을 받게 되면서 일본시장에 처음 진출, 김시스터즈이후 한국가수 2번째로 미국시장에 진출, 한국 여가수 최초 미국 카네기 홀 공연을 하는 등 한국 현대 대중가요사에서 스탠다드 팝의 선구자로 불리며 대단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어 ‘초우’, ‘이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사랑은 생명의 꽃‘, ’서울의 찬가‘, ’그대 없이는 못 살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이미자, 현미, 윤복희와 더불어 1960년대를 대표하는 여가수입니다.
패티김과 전남편 길옥윤은 1966년 같은 무대에 자주 서며 가까워졌으며 그해인 1966년 12월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패티김은 방송에 출연하여 프러포즈에 대해 3월 말쯤 됐는데 ‘4월이 가면’이라는 노래를 작사해 줬다. 이것을 가만히 들어보니까 프로포즈인가 그렇게 됐다”고 설명하며 결혼 후 신혼여행 대신 베트남으로 위문 공연을 떠났다고 합니다.
결혼 당시에 대해 “그때 길옥윤에게 함께 사는 일본 사람이 있었다”고 밝히며 “길옥윤 예쁘장하지, 연예인이지, 나이 40에 여자가 있지 없었겠냐”라고 설명했는데요.
이어 “나도 동거녀를 몇 번 만나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길옥윤의 프러포즈 후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다”라며 “버스를 타고 함께 이동하던 중 길옥윤이 내 눈치만 보더라. 한마디 말은 없고 나도 답답해서 먼저 ‘우리 결혼이나 합시다’라고 말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패티김과 길옥윤은 가수와 작곡가로 음악적으로 환상적인 한 팀이었다고 하는데요. 패티김의 히트곡 중 '그대 없이는 못 살아' '사랑이란 두 글자' 등이 신혼 때 탄생한 곡이라고 합니다.
이후 1968년 딸 최정아(정아 게디니 윌리엄스)를 얻었으나 결혼 5년 만인 1972년 이혼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이혼을 하더라도 계속해서 우리의 음악 생활은 계속해서 하자고 했다“라고 전하며 결혼생활을 유지할 동안 함께 수많은 히트곡들을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패티김은 길옥윤과의 이혼 사유에 대해 “서로 너무 몰랐던 것이 결혼 실패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전하며 “365일
술을 마시며 도박까지 했다. 부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전남편 길옥윤(1927년 2월 22일)은 작사가, 작곡가, 색소폰 연주자로 패티김, 혜은이, 현인, 장혜리 등 당시 쟁쟁한 가수들의 많은 히트곡들을 작사, 작곡을 했으며 1995년 3월 17일 폐암과 척추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혼 이후 패티김은 1974년 초 현재 남편인 아르만도 게디니를 만나게 되었으며 1976년 재혼을 해 1978년 차녀 카밀라 게디니를 얻었습니다.
패티김의 남편 아르만도 게디니는 미국에서 무역업을 크게 하는 이탈리아 사람이며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카밀라 게디니는 2003년 가수로 데뷔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집 발표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웨딩플래너로 전직한 후 정착해 살고 있다고 하며 아버지가 다른 언니인 최정아와는 친자매 이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길옥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여 최정아는 이혼 후 패티김과 함께 살았으며 새아버지 아르만도에게 새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진심어린 효도를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정아(정아 게디니 윌리엄스)는 영국인 윌리엄스와 결혼했으며 유엔난민기구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로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패티김은 뛰어난 노래 실력 뿐 아니라 이국적인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168cm)로도 화제가 되며 당시 미8군 클럽에서 활동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로 인해 성형과 ‘일본에서 누드집을 찍고 왔다’는 등의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에 패티김은 "미8군 공연 시절 쌍꺼풀 수술과 코 수술은 받은 적은 있지만 이후 보형물을 제거했으며 이후 얼굴에 손 댄 적이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누드집은 일본 주간지에 수영복 사진이 실린 것을 두고 루머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패티김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84세임에도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특히 매일매일 5km씩 걷기 운동과 요가를 비롯해 수영 1500m, 철저한 식이요법으로 전성기 때의 컨디션으로 무대를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패티김은 지난 2012년 2월 공식 은퇴 선언을 했으며 10년 만인 2022년 11월 26일 KBS ‘불후의 명곡’을 통해 방송 무대에 오른다고 하는데요.
열정적인 가수 패티김의 무대가 그리웠을 팬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