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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나이 남편 자녀 김한길 의원 부인 아버지 조카 본문
최명길 나이 남편 자녀 김한길 의원 부인 아버지 조카
배우 최명길은 서울 출생, 1962년 11월 11일생 59세이며 키162cm, AB형, 학력은 수도여자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 전문학사), 1981년 MBC 1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습니다.
최명길(59)은 1995년 6월 지금의 남편 김한길(69)과 결혼해 2남(장남 김어진(1998년생), 차남 김무진(2001년 9월 18일생))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배우 권율이 최명길의 조카입니다.
최명길은 남편 김한길과 결홀 할 당시인 1994년에 스크린에 오랜만에 복귀한 주연작 '장미빛 인생'으로 프랑스 낭트3대륙영화제 여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등을 수상했는데요.
이어 SBS 드라마 '결혼'으로 연말 방송대상을 수상, 인기 라디오 DJ로도 활동해서 그해 MBC 방송대상에서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최고의 스타이자 전성기가 최절정을 이루고 있을 때였다고 합니다.
남편 김한길은 "우리가 라디오 DJ를 했는데 복도에서 자주 만났다"며 최명길에 호감을 갖게 돼 전화번호를 물어봤다고 밝혔는데요.
이어 "당시 최명길이 프랑스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해서 제 프로그램에서 초청했다. 그때 최명길에게 '왜 결혼 안 했느냐' '나 같은 남자 어떠냐'라고 생방송에서 대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몇 시에 전화하면 됩니까'라고 묻자 '밤 12시에 하면 된다'고 답했다. 12시에 전화하니까 신호가 한 번 울리고 바로 받았다. 첫 전화에서 '최명길씨 나한테 시집오지 그래요'라고 고백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통해 교제가 시작되어 대중의 눈을 피해 전화 데이트를 주로 하다 식당에서 처음 밥을 먹은 날 열애설이 터졌다고 하는데요. 이에 결혼까지 약속해 만난 지 4개월 만에 예식을 올리게 됩니다.
당시 김한길은 소설가 겸 연예정보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 중이었으며 최명길과는 재혼이었으며 당대 최고의 스타와 인기작가의 결혼으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최명길과 김한길 부부는 1995년 6월 결혼식을 올렸으며 2005년 7월 5일 결혼 10주년 2022년 6월에는 리마인드 웨딩을 올려 많은 축하를 받기도 했습니다.
최명길은 과거 방송에서 “큰아들이 국내에서 열린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 미국에 갔는데 미국에 가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상을 받아왔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최명길의 둘째 아들 김무진 씨는 2022년 7월 군 입대를 했습니다.
최명길 남편 김한길은 일본 도쿄도 출생, 1952년 9월 17일생 69세이며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중앙여자고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가, 1981년에 소설 '바람과 박제'가 문학사상에서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습니다.
김한길의 아버지는 한국사회당, 통일사회당 당수를 지낸 혁신계 정치인 김철이며 2대째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김한길은 1981년 전 부인 이민아 씨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에 아들을 얻었으며 이후 로스쿨 공부를 하는 아내를 외조하며 한국일보 미주지사에 기자로 취직했고 중앙일보 미주지사장까지 지냈습니다.
그러나 결혼 5년 만인 1986년에 부부는 이혼했으며 김한길은 귀국 후 소설가, 기자, 방송인 등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199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여자의 남자'는 총 3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였다고 합니다.
김한길의 전부인 이민아 씨는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장녀이며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출신으로 김한길과 결혼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에서 검사,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이어 김한길과 이혼 후 백인과 재혼 해 2남을 두게 되었으나 2004년 다시 이혼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이후 김한길과 낳은 아들이 2007년에 갑작스런 죽음과 둘째 아들의 자폐 판정을 받게 되었고 2009년 목사가 되었으나 위암 투병 끝에 불과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7년 10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던 김한길은 “ 중환자실에서 의식도 없이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었다”며 “아내는 항상 내 곁을 지켰다. 한 번도 간병인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며 아내 최명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최명길은 1981년 데뷔 이후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1983년 신인상을 비롯해 1984년 MBC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 중 가장 인기 있었던 '설중매'에 정현왕후 역을 맡아 이듬해 '풍란'까지 노년연기까지 펼쳐 스타덤에 오릅니다.
이후 1980년대 MBC 간판 여자 탤런트로 활동, 1987년에는 영화 ‘안개기둥’ 등의 주연을 맡아 준수한 흥행과 함께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도 꾸준히 인기를 유지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주연급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결혼 후에도 활발한 활동은 물론 현재까지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