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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나이 아버지 해밀학교 남편 딸 박세인 본문
인순이 나이 아버지 해밀학교 남편 딸 박세인
가수 인순이가 KBS 2TV '박원순의 같이 삽시다 시즌3‘에 출연하여 근황을 전했는데요. 그녀는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설립했다”라며 직접 운영하는 학교를 소개했습니다.
인순이는 본명 김인순으로 경기도 포천군 출생, 1957년 4월 5일생으로 64세이며 키163cm, 학력은 연천 청산중학교(졸업), 1978년 희자매로 데뷔했습니다.
인순이는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입니다. 하지만 인순이의 아버지는 인순이가 태어나자마자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인순이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1960년대의 대한민국에서는 혼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는데요. 특히 당시에는 흑인에 대해 더 안 좋게 보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더욱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인순이가 가수로 데뷔한 이후에도 차별은 계속되었다고 하며 일화 중 하나가 인순이가 희자매로 활동하던 시절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 때문에 방송에 나올 때에는 머리에 천이나 가발 모자까지 총동원해야 했다고 합니다.
인순이는 경제적으로 매운 힘들 상황이었으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연예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때 김완선의 이모이자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한백희의 눈에 들어 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인순이는 한백희를 따라 1980년대 초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KBS 7대 가수상 수상을 비롯해 1984년 KBS 7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가수로서 인기를 얻게 됩니다.
1983년 ‘밤이면 밤마다’가 대 히트를 치게 되며 승승장구를 했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슬럼프가 찾아왔다고 하는데요. 인순이를 데뷔시킨 한백희는 인순이가 아닌 김완선에게 집중하게 되면서 그들의 관계는 끝나게 됩니다.
당시 한백희는 인순이에게 "너는 지는 해, 그 아이는 뜨는 해"라는 말을 했다는군요. 그렇게 인순이는 긴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서 화려한 무대보다는 야간 업소나 복음성가 계열의 공연을 돌게 됩니다.
이후 박진영이 인순이에게 “어느 날 소울이라는 장르가 있는데 선배는 그쪽에도 능력과 소질이 있다”라며 권유했고 흑인음악의 주류인 소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인순이는 박진영과 함께 작업한 1996년 '또'를 통해 재기하게 되며 그동안의 트로트 가수가 아닌 소울이라는 영역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 당시 인순이의 나이가 40대였으며 결국 ‘또’라는 곡은 1996년 하반기 가요 차트에 10원권 내에 오르면서 선전하게 됩니다.
다시 2004년 조 PD의 곡 ‘친구여’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팬 연령층이 다양해지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2006년 원곡이었던 Jean Roch의 Can You Feel It을 리메이크한 '열정', 2007년에는 카니발의 ‘거위의 꿈’을 리메이크하면서 리메이크곡을 연달아 히트를 치게 됩니다.
그러면서 과거의 곡인 ‘밤이면 밤마다’를 좋아하는 팬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까지 유명해지는 가수가 됩니다.
인순이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몇 번의 편지를 주고 받은 게 다라고 하는데요. 인순이는 아버지에 대해서 "부모를 원망하진 않아요. 제가 열네 살 때 아버지로부터 미국으로 오라는 편지를 받았지만 어머니와 그 편지를 찢어버렸어요. 그쪽의 또 다른 가족에게 슬픔을 안겨주기가 싫었던 거지요."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이어 그녀는 아버지에 대해 "어릴 적 처음 혼혈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아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라며 휴전상태인 낯선 땅에 와서 엄마를 만났고, 결국 내가 태어나게 됐다고 생각하니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순이는 어릴 때 주변의 시선이 동생과 인순이를 남들과 다르게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동생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인순이는 한국에 남아 끝까지 버텨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인순이의 동생은 19살의 어린 나이에 미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을 떠났다고 합니다.
인순이 남편 박경배 씨는 고려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강사,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인순이는 1994년 4월에 여의도 성당에서 4살 연하의 사업가 박경배 씨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은 1991년 유흥업소 '홀리데이 인 서울'에 출연하면서 서로를 알게 되었으며 당시 남편 박경배 씨는 홀리데이 인 서울에서 재무 담당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인순이의 남편이 먼저 사랑을 고백했지만 바로 좋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자신의 길이 평탄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남편을 자신의 인생에 끌어들여 마음고생 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인순이의 남편 박경배가 믿음직한 카운슬러가 되어주면서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하네요.
인순이와 박경배 부부에게는 외동딸 박세인 씨가 있으며 박세인 씨는 1995년생으로 서울 국제학교를 다녔다고 하는데요.며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다고 합니다.
이어 박세인 씨는 19세 때 유엔(UN)에서 인턴을 한 박세인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해 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공부한 후 미국 유명 IT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에도 다녔던 인재로 미국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로도 유명합니다.
이어 MS에서 일한 지 10개월 만에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피트니스 사업을 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사업을 정리한 후 글로벌 마케팅회사에서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어 인순이는 2015년 58세에 나바코리아 WFF 대회에 출전해 스포츠 모델 부문에 출전하여 입상은 실패했지만 ‘퍼포먼스 부문’에는 2위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강원도 홍천군에 지난 2012년 다문화 가정 자녀를 위한 대안학교인 '해밀학교'를 설립, 2013년에 문열 열어 기숙사비를 비롯한 교육비가 완전히 무료라고 하며 서로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다문화 자녀와 비다문화 자녀가 6 : 4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차별과 고난 속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까지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인순이가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